묵비권을 행사하시겠습니까?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이 흉흉한 수사관 앞에서 "묵비권을 행사하겠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팔짱 끼고 기다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멋있어 보이지 않나요? 나도 나중에 기회 되면 한 번 해봐야지 싶기도 하고요.

하지만 실제 형사사건에서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묵비권 행사를 추천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왜일까요?

진술거부권이 뭔가요

수사기관 조사를 받으면 제일 먼저 권리고지를 받습니다. 조사받는 사람을 위한 권리를 미리 알려주는 거죠.

경찰이나 검찰 수사관이 조서를 확인시켜 주면서 "진술거부권을 행사하시겠습니까?"라고 물어봅니다. 이게 바로 묵비권입니다.

얼핏 보면 완전 이득 아닌가요? 진술 안 해도 불이익 없다고 하니까요.

반대로 3호를 보면 "진술하면 유죄 증거로 쓸 수 있다"고 하니 뭔가 불리한 것 같기도 하고요.

왜 이런 권리가 생겼을까

과거에는 변호인 조력권 같은 권리들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한 경우가 빈번했습니다.

그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형사절차에서 절차적 보장이 굉장히 강화되었고,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이런 진술거부권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고 있는 겁니다.

변호사가 묵비권을 추천하지 않는 이유

실제 사건을 진행하다 보면 변호사가 개입했는데도 묵비권 행사하라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겪을 수 있는 사건들의 경우에는 오히려 조사 과정을 통해서 얻어갈 것을 얻어가는 게 훨씬 낫기 때문입니다.

묵비권 행사하면 생기는 문제들:

• 억울함을 호소할 기회가 사라집니다
• 반성하는 태도를 보여 양형을 낮출 기회를 놓칩니다
•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밝힐 증거자료를 제출할 기회가 없어집니다
• 조서에 유리한 내용을 남길 수 없습니다

그럼 언제 묵비권을 써야 하나요

물론 묵비권 행사가 필요한 경우도 분명히 있습니다.

참고인인 줄 알았는데 피의자였다거나, 억울한데 표적 수사가 되고 있다거나, 갑작스럽게 체포되어서 변호사 조력이 필요한데 조사가 진행되려고 한다면 묵비권을 행사하고 변호사 조력을 기다리는 것도 방법입니다.

현실적인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형사소송법상 법률적인 불이익은 없다고 하지만,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심증 형성에 안 좋은 작용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법적으로는 불이익이 없다고 해도 실무적으로는 영향을 준다는 걸 부인할 수 없어요.

전체적인 조사에서 모두 묵비권을 행사한다면 조사 자체가 중단되거나 연기됩니다. 조사 자체가 없어지는 것과 같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무 때나 묵비권을 사용하는 것보다 조사받기 전에 충분히 준비하고, 준비한 내용을 정돈되게 말해서 조사를 잘 받는 게 훨씬 낫습니다.

억울하다면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세요. 죄를 인정한다면 반성하는 태도를 보여 양형에 유리하게 만드세요.

• 조사 전 충분히 검토하고 준비하기
• 변호사와 상담해서 전략 수립하기
• 억울함을 해명할 증거자료 준비하기
• 일관성 있게 진술하기

정말로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아무런 이유 없이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조사는 여러분의 억울함을 해명하거나 진심 어린 반성을 보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잘 활용하세요.

영화처럼 멋있게 보이는 묵비권 행사보다, 실전에서는 준비된 진술이 훨씬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