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이야기

대포통장 만들 목적으로 거짓말하고 계좌 개설하면 업무방해죄? 대법원 판례 분석

등록일 | 2025-11-28
대포통장 만들 목적으로 거짓말하고 계좌 개설하면 업무방해죄?
대법원 2023. 8. 31. 선고 2021도17151 판결

대포통장 만들 목적으로 거짓말하고 계좌 개설하면 업무방해죄?

위계업무방해 대포통장 접근매체 무죄
다른 사람에게 팔 목적으로 법인 명의 계좌를 개설하면서, 예금거래신청서에 통장을 양도할 의사가 없다고 거짓으로 기재했습니다. 검찰은 금융기관을 속여 업무를 방해했다며 위계업무방해죄로 기소했어요. 하지만 대법원은 금융기관이 제대로 심사하지 않은 것이지 신청인의 거짓말이 업무방해 위험을 만든 것은 아니라며 무죄 취지 판결을 내렸습니다.

사건의 경위

피고인은 법인 명의로 여러 은행에 계좌를 개설했어요. 당연히 계좌 개설 신청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그 서류에는 금융거래의 목적접근매체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의사가 있는지를 묻는 항목이 있었습니다.
피고인은 실제로는 통장을 다른 사람에게 팔 생각이었지만, 신청서에는 양도 의사가 없다고 허위로 기재했어요. 은행 직원은 이 서류를 믿고 별다른 추가 확인 없이 계좌를 개설해줬습니다.
접근매체란?
전자금융거래법상 예금통장, 현금카드, 체크카드, 신용카드, 비밀번호 등 전자금융거래에 사용되는 수단이나 정보를 말해요. 이런 접근매체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거나 대여하는 것은 전자금융거래법으로 처벌받습니다.
검찰은 피고인을 전자금융거래법 위반뿐만 아니라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로도 기소했어요. 은행을 속여서 계좌 개설 업무를 방해했다는 거죠.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란?

업무방해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요. 위력으로 방해하는 것과 위계로 방해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위계란 사람을 속이거나 기망하는 행위를 말해요.
문제는 모든 거짓말이 다 업무방해가 되는 건 아니라는 점이에요. 그 거짓말이 실제로 업무방해의 위험성을 발생시켰는지가 핵심입니다.

신청·허가 업무의 특수성

대법원은 오래전부터 일관된 입장을 유지해왔어요. 상대방으로부터 신청을 받아 일정한 자격요건 등을 갖춘 경우에만 수용 여부를 결정하는 업무는 특별하다는 거예요.
이런 업무는 애초에 신청서에 기재된 사유가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걸 전제로 하여 자격요건을 심사·판단하는 것이 본질입니다. 그래서 업무담당자가 사실을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채 허위 신청서를 가볍게 믿고 수용했다면, 이는 업무담당자의 불충분한 심사에 기인한 것이에요.
따라서 이런 경우 신청인의 위계가 업무방해의 위험성을 발생시켰다고 할 수 없어서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를 구성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립된 판례입니다.

이 사건의 구체적 판단

검찰의 주장
거짓 답변으로 은행을 속여
계좌 개설 업무 방해
피고인의 주장
은행이 제대로 심사 안 한 것
업무방해 아님
대법원 판단
은행의 불충분한 심사에 기인한 것이므로
신청인의 위계가 업무방해 위험 발생시킨 것 아님 (무죄 취지)
1단계: 계좌개설 신청
피고인이 접근매체를 양도할 의사로 금융기관에 법인 명의 계좌를 개설 신청했어요.
2단계: 허위 기재
예금거래신청서 등에 금융거래의 목적이나 접근매체의 양도의사 유무에 관해 허위로 기재했습니다.
3단계: 은행의 계좌 개설
계좌개설 심사업무를 담당하는 금융기관 업무담당자가 단순히 예금거래신청서에 기재된 허위 답변만을 그대로 믿고 추가 확인 조치 없이 법인 명의 계좌를 개설해줬어요.
4단계: 법원의 판단
그 계좌개설은 금융기관 업무담당자의 불충분한 심사에 기인한 것이므로, 피고인의 위계가 업무방해의 위험성을 발생시켰다고 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결론: 업무방해죄 불성립
따라서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어요.

은행의 심사 의무

이 판결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해요. 계좌 개설이라는 업무는 본질적으로 심사 업무라는 겁니다.
은행은 신청서를 받으면 그 내용의 진실 여부를 증빙자료를 요구하는 등 추가적인 확인조치를 통해 검증해야 해요. 단순히 신청인이 체크한 내용만 믿고 계좌를 개설해주면 안 됩니다.
만약 은행이 제대로 심사했더라면 피고인의 거짓말을 발견했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은행이 형식적으로만 확인하고 넘어갔다면, 이는 은행 스스로의 심사 의무 소홀이지 피고인의 위계 때문에 업무가 방해된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다른 범죄와는 별개

주의할 점은, 업무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책임이 없어지는 건 아니에요. 피고인은 여전히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접근매체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니까요. 또한 그 통장이 실제로 범죄에 사용됐다면 사기방조죄 등 다른 범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어요.

실무상 중요한 의미

업무방해죄의 엄격한 해석
이 판결은 업무방해죄, 특히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를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어요. 거짓말을 했다는 것만으로 곧바로 업무방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심사 업무의 본질 강조
신청·허가 업무는 애초에 허위 신청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전제로 하는 업무예요. 따라서 업무담당자는 당연히 진위 여부를 확인해야 하고, 확인하지 않았다면 그건 업무담당자 자신의 책임이라는 거죠.
금융기관의 심사 강화 필요
역설적으로 이 판결은 금융기관에게 더 철저한 심사를 요구하는 효과가 있어요. 단순히 신청서에 체크된 내용만 보고 계좌를 개설해주면,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금융기관 스스로의 심사 소홀로 평가받을 수 있으니까요.
대포통장 근절은 다른 방법으로
대포통장 문제는 심각하지만,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게 대법원의 입장이에요. 대신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이나 사기방조 등 더 직접적이고 적절한 법률로 처벌해야 한다는 겁니다.
요점 정리
접근매체를 양도할 목적으로 계좌를 개설하면서 예금거래신청서에 거짓으로 기재했더라도, 금융기관 업무담당자가 단순히 신청서의 기재만 믿고 추가 확인 없이 계좌를 개설해준 경우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계좌개설 업무는 본질적으로 심사 업무이므로 신청서 내용이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걸 전제로 자격요건을 심사·판단해야 해요. 업무담당자가 불충분하게 심사한 것은 담당자 자신의 책임이지 신청인의 위계가 업무방해 위험을 발생시킨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접근매체 양도 자체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이며, 통장이 실제 범죄에 사용됐다면 사기방조 등 다른 범죄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이 판결은 업무방해죄의 성립 범위를 명확히 하고, 금융기관의 심사 의무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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